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프랑스 안팎에서 전쟁 꾀하는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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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덧붙인 것이다.
지난주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 지배하고 알제리 독립에 반대해 8년간[1954~1962년] 전쟁을 벌인 것(아마 10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을 것이다)을 “뉘우치거나 사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크롱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분명 2022년 재선을 노리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서 마크롱은 그의 오른쪽에서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과 보수 정당 공화당이 제기하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마크롱은 프랑스 안팎 모두에서 갈수록 더 공격적이고 군사화된 진압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정책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마크롱은 지독하게 수세적으로 군다. 예컨대, 지난 11월 〈파이낸셜 타임스〉 브뤼셀 특파원 메린 칸이 프랑스의 이슬람 혐오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자, 마크롱은 〈파이낸셜 타임스〉로 하여금 기사를 내리고 자신의 반론을 게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몇 주 후 마크롱 정부가 의회에서 졸속으로 통과시킨 새로운 “포괄적 보안법”과는 선을 그었다. 경찰관의 신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 일체를 범죄로 규정해 “경찰을 보호하는 마크롱의 반(反)자유주의적 계획”을 사설에서 비난한 것이다.
이미 경찰은 수년간 노란조끼 시위와 노동조합 활동가,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 학생 등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해 왔다. 지난해 11월 28일에는 수십만 명이 새 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새 보안법의 매우 불길한 측면 하나는 드론, CCTV, 얼굴 인식 등의 감시 기술을 국내에서 더 사용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클로드 세르파티는 한 중요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프랑스 영토, 특히 빈민가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고도로 숙련된 억압적 관료 기구와 완벽한 감시 기술의 심상치 않은 동맹에 직면했다.”
그러나 세르파티는 이러한 정책을 프랑스 제국주의의 전략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사프리크”
민수[군수가 아닌, 민간에서 필요한] 산업 부문에서 독일이나 동아시아 기업과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없었던 프랑스 자본주의는 수십 년 동안 무기와 항공 우주 부문을 특화시켜 왔다. 이런 경향은 해외로의 군사력 투사를 동반했다. 특히, 이른바 “프랑사프리크”가 주 무대였다. “프랑사프리크”란 샤를 드골이 대통령 재임 시절 그의 고문 자크 포카르와 함께 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의 옛 식민지들 사이에서 구축한 비공식 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르파티에 따르면, 2007~2009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프랑스 정부는 이 전략의 판돈을 키웠다. 덕분에 독일이 유럽연합에서 경제적 우위를 점했지만, 프랑스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에서 군사력이 가장 큰 국가가 됐다.
이슬람 급진주의의 확산은 특히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의 부상 이후 더 많은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됐다. [2013~2014년] 프랑스가 [아프리카] 말리에서 벌인 군사 작전이 두드러진 사례다.
마크롱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프랑사프리크의 종말을 선포했었다. 그러나 현재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여기저기에 프랑스군 5100명이 10개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마크롱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자랑했다. “프랑스군은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인] 사헬에서 모범적인 용기를 보여 줬다. 테러 집단과 맞서는 프랑스군의 활동은 유럽 전체를 이롭게 한다.”
또한 그는 “프랑스가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됐다”고 썼다. 마크롱과 그의 정부는 사실상 프랑스의 무슬림 주민을 내부의 적으로 낙인 찍어 왔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는 노동계급에 팬데믹의 비용을 치르라고 강요하는 경제 정책에 항의하는 사람들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교육부 장관은 “이슬람-좌파 동맹”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둘을 연결지었다.
세르파티는 “포괄적 안보” 추구란 아프리카에서의 신식민주의적 개입에 동원한 군사력을 갈수록 자국 국민을 억누르는 데에 동원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마크롱은 국방위원회로 팬데믹 대책을 조정했다. 또, 마크롱은 지중해로 프랑스의 힘을 투사하려 했다. 특히, 이를 위해 터키에 대항하는 그리스-남(南)키프로스-이스라엘 동맹을 지원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에게 허를 찔릴 위험이 있다. 터키의 개입으로 리비아 상황은 유엔이 지원하는 리비아 정부에 유리하게 됐는데, 프랑스는 이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었다. 터키의 행보는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대사관 수를 세 배 이상으로 늘리고, 무역과 원조를 제안하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 제국의 위엄을 추구하다가 내부 저항과 외부 경쟁에 직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