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확전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미국

미국은 1948년 이래 중동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켜 온 사나운(카네 코르소 못지않게 사나운) 경비견이 이란과 일부 아랍국처럼 미국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는 당혹스런 상황이 발생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미국은 “인도주의적 일시 전투 중단”을 제안해, 아랍 국가들을 달래며 자국과 이스라엘을 위해 시간을 버는 한편, 확전을 막기 위해 특수부대·전투기·항공모함·핵잠수함을 동지중해에 배치했다.

“인도주의적 일시 전투 중지” 제안은 바이든 정부가 미국 안팎에서 받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지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제안은 기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인도주의적”으로 소개하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군이 가장 무자비하게 가자지구를 폭격한 것은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이 이스라엘에 “인도주의적 일시 전투 중단”을 요청했을 때였다. 이스라엘군은 자발리아 난민촌, 구급차량 행렬, 암병원,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 등을 극악무도하게 폭격했다.

블링컨의 중동 외교가 난관에 봉착하자, 이번에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번스가 중동으로 날아갔다. 하마스 관련 첩보와 인질 위치 정보 등을 이스라엘에 알려 주는 한편, 가자 전쟁이 다른 지역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중동 지도자들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반발로 “인도주의적 일시 전투 중단” 제안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미 개전 초기에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가자지구에 억류돼 있는 인질의 일부 석방을 조건으로 5일간 휴전하자는 하마스의 제안을 거절했음이 최근에 드러났다(〈가디언〉 11월 9일자). 시온주의 국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뿐 아니라 유대인의 목숨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국의 제안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인도주의적”으로 소개하려는 것 11월 4일 서울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미국 정부를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조승진

11월 5일 블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자 전투가 악화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매우 힘을 쏟고 있다. 이것이 미국 외교에서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임무다.”

“다른 지역으로 확전되지 않도록”은 무슨 뜻인가?

아랍국들·이란·튀르키예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이스라엘 국가를 목청껏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가자지구에서의 인종 청소를 팔장 끼고 보는 상황을 뜻한다.

지금 이스라엘을 가장 맹비난하는 그 지역 정치 지도자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가 “서방의 버릇없는 아이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하며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그리고 튀르키예를 방문한 블링컨을 만나지 않고 피했다.

결국 블링컨은 튀르키예 외무장관을 만났다. 그런데 이 회담 후에 블링컨은 튀르키예가 이란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긴 시간 동안 아주 훌륭하고 생산적인” 회의였다고 평했다.

에르도안의 강도 높은 이스라엘 비난은 중재자 구실을 통해 중동에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더 키우려는 야심을 숨기는 것이다. 또한 튀르키예의 인시를릭 공군 기지에서 최첨단 미군 전투기들이 출격하는 것에 대한 국내적 반대를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이란도 말로는 “미국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휴전하지 않으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관망세를 취하고 있다.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KBS 중동 특파원에게 이렇게 말했다(11월 9일 자).

[미국이] 이 지역 무장 단체들이 끼어들지 않게 저희에게 요청했습니다. 참전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의 요청은 비논리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요청은 저희에게 좀 이상합니다. 이란은 지금까지 이번 전쟁의 일부였던 적이 없습니다.”

헤즈볼라도 아직까지는 가자 전쟁이 하마스의 전쟁이지 헤즈볼라의 전쟁이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는 즉각 확전에 선을 그었다. 그는 “모든 선택지가 고려 대상”이라고 했지만 “일차적 목표”는 가자지구에서 휴전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중동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다. 13일(현지 시각) 시리아 북동부에 주둔하는 미군과 친이란계 민병대가 24시간 동안 교전을 벌였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17일 이후 시리아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을 대상으로 최소 48차례의 공격이 있었고 미군 병사 56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