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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나크바(대재앙)의 날을 기억하라
이스라엘은 나크바 테러를 계속 자행하고 있다

지난달 이스라엘은 녹음된 아기 울음 소리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유인해서 공격했다.

이스라엘이 그런 짓을 자행한 게 지난달이 처음은 아니다. 최초는 1948년 나크바(“재앙”이라는 뜻) 때로,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약 100만 명을 고향에서 쫓아냈다.

1948년 10~11월 피란 가는 팔레스타인인들 ⓒ출처 Wikimedia Commons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바로 이런 만행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나크바의 참상은 서방의 지원 아래 거듭 반복됐다. 나크바에 대한 묘사를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이 벌이는 학살과 무척 닮아 있다.

나크바 당시 10대였던 팔레스타인인 학자 무함마드 할라즈는 1948년 자파의 한 학교에서 목격한 시온주의자들의 학살에 관해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드럼통 폭탄이 굴러와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학교가 그렇게 폭탄 공격을 당한 후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 시신들을 보러 병원에 가야겠다. 그래서 꼭 기억해 둬야겠다.’

“나는 병원에서 적어도 대여섯 구의 시신이 돌로 된 시신 안치대에 놓여 있는 것을 봤다. 누구도 열 살이 넘지 않아 보였다.”

이 학살은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주도면밀하고 조직적으로 자행한 무수한 만행의 하나일 뿐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과 그의 정부는 이 유혈 낭자한 퇴거 작전을 ‘달레트 계획’이라고 불렀다.

1948년 3월 10일에 공식 채택된 달레트 계획은 시온주의 무장 조직과 당시 막 창군된 이스라엘군을 동원해 아랍인들을 고향에서 내쫓을 자세한 계획을 담고 있었다.

달레트 계획의 목표 중에는 팔레스타인인 마을 파괴도 있었다. 이를 위해 마을에 불을 지르거나 폭약으로 마을을 날려 버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 계획에는 모든 저항은 “궤멸시키고, 주민들은 국경 바깥으로 쫓아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시온주의 세력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식량과 수도, 전기를 끊고 “바리케이드와 지뢰밭”으로 도로를 차단했다.

달레트 계획을 수행한 지 1년 만에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78퍼센트를 장악했다. 불과 2년 만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도시와 마을이 400곳 넘게 파괴됐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유엔은 그런 이스라엘을 수수방관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에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6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948년에 미처 차지하지 못했던 땅까지 거머쥐었다. 이스라엘은 동(東)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 시나이 사막, 골란고원을 점령한 뒤 팔레스타인인들을 거의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이스라엘은 검문소, 경계 장벽, 철책으로 점령을 고착화시켜 팔레스타인인들을 더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어 저항을 분쇄하려 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를 뒷받침하는 인종차별적 법을 도입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이등 시민으로 만들고, 세계 도처에 있는 6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았다.

나크바 당시 사용된 전술은 지금도 이스라엘 국가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강탈하도록 정착자들을 부추기는 데서 쓰이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이스라엘은 정착자들에게 더 많은 무기와 군용차를 제공해 그들이 테러를 확대하도록 지원을 늘려 왔다.

물론, 나크바의 살인 전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테러 국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폭탄, 사격, 기아 전술로 벌이고 있는 인종 학살이다.

시온주의 국가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유대인만의 배타적 국가를 세우고 그 땅에 아랍인을 되도록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