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내의 주요 논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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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이래 노동자연대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되도록 폭넓게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운동은 유례없는 규모로 일어난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일부이다. 그 국제 운동은 국제 정치에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바이든이 재선 도전에서 낙마했고, 영국에서는 보수당 정권이 몰락했다.
유엔의 표결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9월 18일 유엔 총회에서 압도 다수의 국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결정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시사적이다.
ICJ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가자지구 점령이 불법이고 완전히 종식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 ICJ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배상을 받아야 하고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고, 이스라엘이 구축해 놓은 인종 분리 체제가 종식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124개국이 그 결의안을 지지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고작 14개국이 반대했다.(한국은 기권했다.)
이는 세계 곳곳의 거리에서 나타난 팔레스타인 연대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0월 7일을 계기로 대중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노동자연대와 팔레스타인인들, 이집트인들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그리고 이 운동은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다. 국회의원이나 매스미디어는 추수했을 뿐이다.
노동자연대는 이 운동 속에서 가장 필요한 주장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그런 주장들 덕분에 운동의 저변 확대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이하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더 효과적이 되기 위해 필요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주요 쟁점들을 다루고자 한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억압을 계속 지지해 왔다. 물론 거기에는 긴장도 있다. 예컨대 바이든과 네타냐후는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의 휴전을 놓고 불협화음을 빚었다. 그러나 미국은 무기 판매를 일절 중단하겠다고 이스라엘을 위협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이 지난 9월 서방의 휴전 촉구를 물리쳤을 때 미국은 오히려 87억 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이스라엘에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네타냐후는 휴전 촉구를 거절하면서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의 살해를 명령한 뒤,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살기등등한 연설을 했다. 바이든은 나스랄라의 죽음에 찬사를 보냈다. 미국은 네타냐후의 행동에 짜증을 내면서도 시종일관 그 행동을 돕고 있다.
다른 서방 정부들도 마찬가지다. 영국 정부는 학살 규모에 우려를 표하지만 무기 공급과 외교적·이데올로기적 지원을 전면 중단하지 않으려 한다. 서방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 230만 명에 대한 식량·식수·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것을 용인하고 돕는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도발에 직면해 체면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미사일로 공격하자,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편이고, 이란의 공격에 맞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스타머는 레바논을 침공해 들어온 이스라엘군을 몰아낼 레바논의 자위권은 지지하지 않았다.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서안지구를 침탈하는 자들에 맞설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지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상황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내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서방의 관계의 성격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본지는 이스라엘을 서방의 중동 경비견으로 본다. 이스라엘은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서방의 노선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중동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고 첨단 기술과 군사 부문의 역량을 발전시킨 덕에 때때로 더 과감하게 서방의 의향을 거스르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중동 내 아류 제국주의 각축전의 주요 플레이어의 하나다.(다른 주요 플레이어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국, 튀르키예가 있다.) 세계적 수준의 강대국이 중동 정권들을 ‘꼭두각시’처럼 부린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다. 그런 설명을 피하려면 중동 내 강국들이 독자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의 지원으로 건국됐고 지금도 중동이라는 세계의 핵심 지역에서 제국주의의 도구 구실을 한다. 제국주의의 적들을 제거하는 데서 이스라엘이 보인 탁월한 능력은 자신의 주인인 제국주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현재 그 주인, 즉 미국 제국주의는 곳곳에서 도전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 막대한 무기를 지원할 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대결인 중국과의 대결은 대만을 둘러싼 끊임없는 긴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수 있는 세 전선에 대처해야 하는 처지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이라는 유용한 공격 부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없었다면 미국은 그런 국가를 하나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오랜 지론이다.” 실제로 1986년 바이든은 상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없다면 미국은 중동에 걸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만들어 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인식, 이스라엘이 서방을 조종하고 있다는 인식도 상식처럼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인식은 “유대인 로비”의 영향력을 핵심 문제로 보다가 유대인 혐오적 주장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제국주의의 지원이 갖는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가 이를 잘 지적한 바 있다. “아랍 세계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관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우리는 시온주의에 관한 잘못된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유대인이 미국을 지배한다는 주장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틀렸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미국 자신이다. 미국에는 대기업들과 석유 산업의 핵심 기업들, 무기 기업들이 있고, 이른바 ‘기독교 시온주의’가 있다. 이스라엘은 한때 영국의 도구였고, 지금은 미국의 도구다.”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
이스라엘의 본질이 식민 정착자 국가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입증됐다. 이것은 의식의 중대한 전진이다. 이스라엘과 같은 유형의 식민 정착자 국가의 건국은 토착 주민에게서 강탈한 땅에 정착자를 대대적으로 이식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게 세워진 국가는 확장과 토착 주민의 절멸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식민 정착자들이 보기에, 강탈한 땅에 남은 토착 주민들은 계속 권리를 박탈당하고 배척받는 처지에 있어야 하고, 더 좋기로는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한다.
정착자 식민 프로젝트는 또한 파편이 된 노동계급을 형성시킨다. 시온주의의 경우, 그 프로젝트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강탈한 노획물로 득을 보는 이스라엘 노동계급을 형성시켰다.
이스라엘 내에는 이스라엘 국가를 거부하는 개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노동계급이 계급으로서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가세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10월 7일 공격 때 하마스에게 잡혀간 이스라엘인들의 운명을 놓고 일어난 맹렬한 반네타냐후 시위에서도 입증됐다. 시위와 함께 파업까지 일어나 이스라엘 정치를 뒤흔들었지만, 그 행동들은 이스라엘 정치의 시온주의적 성격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야당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 저항을 진압하는 데서 네타냐후가 무능하다면서 반발하는 것이다.
레바논 침공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내에서 어떠한 항의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국가’ 방안
‘두 국가’ 방안의 죽음인가 부활인가? 엄청나게 큰 역사적 사건은 사람들의 오랜 확신을 뒤흔들기도 한다. 1930년대에 세계적으로 거대한 위기가 벌어지고 파시즘이 부상하자 일단의 개혁주의자들은 점진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포기하기도 했다. 온건 사회주의자였던 R H 토니는 이렇게 썼다. “양파를 한 겹씩 벗겨 먹는 것은 가능하지만, 살아 있는 호랑이의 가죽을 한 발씩 벗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이의 배를 산 채로 가르는 데 능한 호랑이가 그대의 가죽을 먼저 벗겨 버릴 것이다.”(물론 이런 변화가 늘 지속성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남긴 토니는 십 년간 전투적인 언사를 하다가 결국 노동당 우파의 지지자가 됐다.)
‘두 국가’ 방안의 가능성에 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드러난 ‘두 국가’ 방안의 실체는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
오슬로 협정이 체결됐을 때 역사가이자 저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렇게 강조했다. “그 협정은 정확한 명칭으로 불려야 한다. 팔레스타인의 항복 문서라고.” 그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미니 국가의 터전이 되기로 한 땅에는 오히려 이스라엘인 정착촌들이 대대적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팔레스타인 당국(소위 “자치정부”)은 이스라엘의 억압에 부역하는 세력이다.
올해 7월 이스라엘 의회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68 대 9로 통과시켰다. 그 결의안은 이스라엘과의 합의를 통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도 거부한다.
‘두 국가’ 방안은 사기이고 진정한 쟁점을 직시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진정한 쟁점은 어떻게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비종교적 단일 민주 국가를 세우고,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팔레스타인인 모두의 귀환권을 실현하느냐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단일 국가가 세워져야 한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전략
본지는 지난 1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서로 연결된 세 요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팔레스타인인 자신들의 저항
- 중동 노동자·빈민 대중의 반란
- 서방과 친서방 나라들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고 이스라엘 지원에 맞서는 운동
이런 강조점은 어떻게 입증됐는가?
첫째,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놀라운 용기를 보여 주고 있다. 네타냐후가 1년 동안 가자지구에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고도 저항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군이 ‘진압’을 완료하고 떠난 곳마다 저항이 되살아났다.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행위 자체가 다시 저항을 낳기 때문이다. 모든 살해는 복수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몰고 온 어마어마한 야만과 미국이 제공하는 막대한 무기는, 무장 저항만으로는 시온주의를 분쇄하거나 진정한 해방을 쟁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는 2021년 총파업과 같은 수준의 조직적인 저항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시온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100퍼센트 지지한다. 그런 지지를 기초로 혁명가들은 자신의 독자적인 혁명적 정치와 하마스·헤즈볼라 정치 사이의 차이를 제기할 수 있다.
둘째, 지난 1년 동안 아랍 지배자들은 자기 계급의 이익에 따라 미국 제국주의에 협조해 왔다. 그들은 뒷구멍으로 이스라엘과의 교역을 지속하고, 유가 인상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을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기까지 했다.
요르단 정권은 지난 4월 이란이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이스라엘을 방어했다.
얼마 전 요르단 외무장관 아이만 사파디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할 의사가 있다”고 발언해 중동 곳곳에서 커다란 분노를 자아냈다.
중동의 수많은 사람들은 자국 지배자들이 말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한다면서 실제로는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이집트에는 1억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다. 이집트 노동자·빈민 대중이 반란을 일으켜 팔레스타인 지지를 결집시키고 자국 지배자들을 타도한다면,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망을 획기적으로 열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이집트 노동자·빈민 대중은 진정한 팔레스타인 연대 세력으로서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는 장벽을 허물 것이다. 또한 요르단·레바논·시리아 등지의 반란을 고무할 것이다. 탄압받고 있는 수단 혁명에도 새로 희망을 줄 것이다.
그런 반란은 대중의 자력 해방 과정의 일부로서, 제국주의가 이스라엘이라는 경비견을 더는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런 혁명을 성사시키려면 연속혁명 전략의 관점에 따라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식료품 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투쟁과, 민주적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 팔레스타인인 인종 학살에 맞선 투쟁이 결합돼야 함을 뜻한다.
아랍 정권들에 맞선 혁명이 필요하다는 관점은 그 정권들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도부와도 일부 충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지난 투쟁에서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가장 첨예한 사례는 1960년대 요르단에서의 경험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1967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동예루살렘·가자지구 침공으로 100만 명이 훌쩍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1960년대 말에 이르면 요르단에는 약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저항 조직들이 발전했고 그 중심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있었다.
1968년 3월 이스라엘은 PLO가 주둔한 요르단의 도시 카라메를 공격했다. 친서방 요르단 국왕 후세인의 정부는 그 공격이 벌어지기 전에 PLO가 물러서기를 바랐다. PLO는 이를 거부했다.
PLO 전사 수백 명이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였다. 요르단 군대는 전투에 끌려들어 왔고 이스라엘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투를 계기로 PLO는 영웅이 됐다. 후세인은 PLO가 자신의 통치력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했다.
1970년 후세인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지와 무기 지원을 받으며 PLO를 상대로 내전을 일으켰다. 후세인의 군대는 팔레스타인인을 1만 명 넘게 살해했고 이 사건은 훗날 “검은 9월”로 불리게 된다. PLO는 요르단에서 쫓겨나 레바논에 정착했다.
계급을 초월한 민족 운동을 늘 추구해 온 PLO 지도자들은 아랍 지배자들에게 도전하는 것을 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노선에 따라 PLO 지도자들은 아랍 대중의 자국 지배자들에 맞선 저항을 외면했다.
그러나 1960년대 요르단에서의 경험이 주는 올바른 교훈은 시온주의와 제국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을, 그 체제의 현지 지배자들에 맞서는 투쟁과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마스는 이란 정권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란 정권은 2년 전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분쇄한 바 있다. 하마스가 기대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인 튀르키예 정권은 쿠르드 민족 해방 투쟁을 억압하고 자신의 정적을 탄압하는 정권이다.
하마스가 그런 동맹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계급 투쟁이 아니라 무장 저항을 해방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무장 저항을 중심에 놓는 운동에서는 무기와 은신처, 외교적 지원이 중요해진다.
약 25년 전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창시자 토니 클리프는 이렇게 썼다. “팔레스타인인들과 다른 모든 중동 민중의 운명은 아랍 노동계급의 손에 달려 있다. 아랍 노동계급의 힘의 중심은 이집트에 있고, 그보다 덜한 정도로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에 있다.”
희망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아랍 대중의 반란은 국가 탄압과, 중동을 지배하는 민족주의 정치에 의해 억제됐다.
어느 시점에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강력하게 분출할 것이다. 최근 이집트의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가 지적했듯이 “시온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국주의·시온주의와 결탁하고 잔혹한 독재를 펴고 자국민을 궁핍하게 만드는 정권들을 타도하는 데 있다.”
이슬람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현재 중동에서 반제국주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슬람주의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이끄는 하마스와 레바논인들의 저항을 이끄는 헤즈볼라도 모두 이슬람주의 조직이다.
한편, 한국을 포함해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도 무슬림들은 핵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무슬림들은 오늘날 인종차별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다. 서구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공격은 극우의 무슬림 혐오 부추기기와 하나로 통일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무슬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널리 퍼져 있고, 한국의 많은 진보·좌파도 그러한 편견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특히, 종교 사상을 문제 삼으면서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차별화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지지하는 좌파들은 하마스를 마치 아이시스(ISIS)와 같은 반동적 운동으로 묘사하는 주류 언론의 관점을 거부하고,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진정한 대중 정당임을 때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여전히 ‘세속 대 종교’를 좌우를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로 삼으며 하마스를 우파로 보는 경우가 많다. 또는 하마스가 저항에서 하고 있는 주도적 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종교 사상이 아니라 그 운동이 출현한 역사적 조건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 이슬람주의는 제국주의의 중동 지배에 맞서 대중적 반감이 커지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우리는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민족 해방 운동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이슬람 정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예컨대 이란 지배자들과 똑같은 성격을 갖는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