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협” 이용한 국내 억압 강화는 지배자들의 오랜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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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기획에서 핵심 역할을 한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의 수첩에서 ‘NLL에서 북한 공격 유도한다,’ ‘오물 풍선’ 등 내용이 확인됐다.
북한을 자극하고 이용해서 쿠데타의 명분을 만들려고 한 증거가 밝혀진 것이다.
이미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이 오물 풍선의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는 의혹, 10월 초 평양 상공의 무인기가 한국군이 보낸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자들은 국내의 적을 공격할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 북한과의 국지전 도발이라는 위험천만한 일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 계획들이 현실화됐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지 모른다.
이는 우익이 입에 달고 사는 “안보”와 “국익”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보여 준다.
12월 24일에 열린 촛불행동의 집회에서 자신을 접경지 파주 근처에 사는 주민이라고 소개한 윤숙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접경지 주민들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 [우익적인] 탈북민 단체를 앞세워 대북 전단을 날리면 북한의 오물 풍선이 날아오고, 대북 확성기를 틀면 다시 대남 확성기를 트는 형국이 반복됐습니다.”
최근 역사를 보면 한국 정부가 북한의 무력시위를 바라고 국내 정치에 이를 이용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북한 무장 병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침입해 총격을 벌인 일이 있었다. 당시 정치 위기에 처해 있던 김영삼 정부가 북한 측에 요청해 벌어진 일이었다(‘북풍’ 사건).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지금의 국민의힘)의 득표율을 4퍼센트포인트 높여 줬다.
1997년 대선 때도 한나라당(지금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회창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당시 청와대 행정관 등 3인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청탁했다. 이른바 ‘총풍 사건’이다.
설사 처음부터 기획하지 않았더라도 우익들은 남북 긴장 상황에서 벌어진 비극이나, 진상을 알 수 없는 일을 부풀리고 왜곡해서 이용해 왔다.
우익이 지금도 “안보”의 명분으로 이용하는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익은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짓지만 그것을 입증할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국내 정치 위기를 돌파하는 데 천안함 사건을 십분 활용했고, 한미동맹 강화와 군비 증강의 근거로 삼았다.
1987년 11월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 벌어진 대한항공 폭파 사건도 잘 알려진 사례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선거 하루 전날 국내로 압송됐고, 이는 노태우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사건 역시 온갖 의혹이 제기됐으나 투명하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간첩 조작 사건도 계속 있었다.
1987년에 안기부(현 국정원)는 ‘여간첩 수지 김의 남편 납북 기도 사건’을 대대적으로 띄웠다. 그러나 진실은 한국 기업의 당시 홍콩 주재원 윤태식이 홍콩에서 자신의 처(수지 김)를 살해하고 처벌이 두려워 월북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이었다.
이런 일은 과거 권위주의 독재 시기의 유산만이 아니다.
2012년 말~2013년 초엔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 우익은 정권을 재창출하고자 노무현의 남북정상회담 NLL 발언록을 공개해 색깔론을 일으키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우성 씨는 갖은 고초를 겪고 2015년에 와서야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고 간첩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은 취임 이후, 이 사건의 실질적 책임자인 공안 검사 출신 이시원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외부의 적’을 명분으로 국내 억압 통치를 강화하는 것은 지배자들의 오랜 수법이다. 이들은 위기가 심화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피해와 비극, 억울함은 아랑곳없이 국지전 유도 등 위험천만한 수단을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