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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운동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인터뷰:
중국 동포에게 듣는 반중·혐중 선동의 위험

윤석열과 극우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하려고 반중·혐중 선동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동포(조선족) 당사자인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박 소장은 희생자 다수가 중국 동포였던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유족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극우들의 반중·혐중 선동으로 중국 동포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클 것 같습니다. 피해 사례가 있나요?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 ⓒ이미진

언론사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전해 들은 피해 사례는 딱히 없어요. [언론들이] 인터뷰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는데 선뜻 나서서 얘기하겠다는 사람도 없었어요. 한편 당사자들이 노출을 꺼리는 자체가 불안감이 증폭됐다는 방증 같아요.

극우의 선동과 달리 탄핵 국면에 깊게 관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이러한 국면에서 발화를 극도로 조심하고 스스로 검열할 수밖에 없거든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벽장 속으로 숨어들어 가려고 하지 언론에 대놓고 ‘나 무서워요, 불안해요’ 하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진짜 불안한 사람은 말이 없는 법입니다.

사실 반중·혐중 정서와 선동은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언제는 심하지 않았나요? 저는 2015년에 한국에 왔는데 늘 그런 이슈들이 있었어요. 2016년에는 사드에서 비롯된 감정의 골, 2017년에는 대림동을 범죄자 소굴로 재현하는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 중국 공산당의 댓글 부대들이 조직적으로 한국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가짜뉴스] 차이나 게이트 음모론, 그리고 코로나19도 있었죠.

그 이슈들에 대해서 ‘이건 혐오다’라는 목소리를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갑자기 특별히 불안해지지는 않았어요.

언론들이 불안감만 부각하고, 선주민과 이주민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다고 계속 얘기하면 오히려 정말로 그렇게 되는 역효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부지법 폭동을 보면서 이건 좀 심각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기존에는 차별과 혐오가 언어의 층위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물리적 폭력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구나, 국가기관도 저렇게 공격받는데 이주민들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언제든지 인종주의에 기반한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서부지법 폭동 이튿날 어느 언론에서 저에게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제법 많이 해왔지만 그날 처음으로 익명으로 실어줄 수 없겠냐고 요청을 드렸어요.

반중·혐중을 누가 왜 부추기는 것일까요?

보수 진영에서 부추기고 있고, 특히 윤석열 정부가 계엄을 선포하면서 중국 간첩을 직접 거론했잖아요. 이웃한 수교국과 외교적 마찰이나 갈등도 불사하고 그렇게 근거도 없는 얘기를 콕 집어서 얘기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인데요. 극우·보수 세력들한테 좋은 소재를 던져준 셈이죠.

그들은 화교도 중국인이라고 싸잡아서 비난하는데, 사실 한국 화교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본격적으로 이주한 동포 포함 중국계 이주민과는 구별되는, 대만 국적 소지자입니다. 냉전시기 한국과 대만은 반공을 국시로 맺어진 동맹이었고, 나이 많은 화교들도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아왔는데 자신들이 공산주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당하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겠어요. 한국 화교의 역사적인 맥락과 특수성에 대해서 몰지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해프닝인데요. 반중·혐중 선동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빈약한지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 저해됐던 것은 분단 체제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단 체제 때문에 반북·혐북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잖아요. 북한에 대한 입장에 따라서 소위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측면이 없지 않아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그런 만큼 보수 진영은 반북주의를 통해서 자기 진영을 결집하고 강고하게 하는 전략을 늘 취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북 이데올로기가 설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 냉전 세대에게는 호소력이 있을지 몰라도, 북한을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는 거의 없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경제적인 격차나 국력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제 또래를 저는 만나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지금 북한도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우리 남남이다, 두 개의 국가로서 서로 간섭하지 말자고 하잖아요.

반면 중국은 최근에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고 경제력이 부상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실재하는 위협이 된 거죠. 문화를 둘러싼 분쟁, 사드와 한한령 같은 문제도 있었고요. 반중·혐중이 하루아침에 조장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은 늘 지정학적으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고 지금 또 한국과 미국, 일본이 진영으로서 더 결합되다 보니 타국의 반중 정서가 수입되고, 공유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에서 제작한 혐중 거부 손팻말 (다운로드: bit.ly/anti-sinophobia-campaign) ⓒ출처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다른 한편, ‘혐중’은 혐오와 중국이 결합된 표현이잖아요. 저는 이 혐오의 문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등 혐오가 다양한 정체성을 향하고 있는데요. 소위 촛불과 진보진영에서도 그런 현상에 다소 무감했고, 분위기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죠.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한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 책임을 분명 통감해야 합니다. 그런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가 특수한 국면에서 중국과 강하게 결속한 것이고 또 다른 소수적 정체성과 언제든지 결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셀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중국 동포는 일상생활 속에 섞여 살며 기여하고 있습니다. 반중·혐중 선동이 다른 이주민, 보통의 한국인들한테도 어떤 영향 미칠까요?

제가 앞서 진짜 불안한 사람은 말이 없다고 얘기했는데요. 말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한국 사회 일부(극우)와의 이성적인 대화 가능성에 회의를 품고, 벽장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주민 집단과 선주민 집단의 단절은 더욱 심각해지고, 불신과 오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정책적으로도 반영되고 권리도 증진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그 사람들이 더욱더 게토화된 이주민 밀집 지역 안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있지만 없는 존재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그림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걱정됩니다.

극우의 부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잖아요. 유럽을 비롯해 반이민 정서가 대두하며 극우가 득세하는 추세인데요. 극우의 사기를 꺾고 저지해야 합니다.

‘이런 혐오를 하면 안 돼,’ ‘혐오는 나쁜 거야’ 하는 층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한 발 치고 나가서 ‘이주민이 탄핵 집회에 나왔다고? 그게 뭐가 문제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가짜뉴스, 거짓 선동에 수동적으로 팩트 체크만 해서는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습니다. 반혐오 세력, 평등을 지향하는 진영들을 최대한 단결시켜서 극우에 맞서야 우리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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