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선동가 찰리 커크 피격 사망 이후:
트럼프의 커크 순교자 만들기로 전 세계 극우가 준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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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극우 선동가 찰리 커크의 피격 사망이 국제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커크는 죽는 순간까지 역겨운 증오 선동을 토해냈다. “수정헌법 제2조[총기 소유 자유 보장]라는 신께서 주신 권리를 위해서라면 총에 맞아 매년 좀 죽는 거야 치를 만한 대가”라던 커크는 9월 10일 극우 집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선량한 미국인”이 아니니 그들의 총기 소유는 문제라고 떠들던 중에 총에 맞았다.
자업자득이다. 팔레스타인인·유색인종·여성 등 천대받는 사람들을 유린하는 폭력을 줄곧 찬양하던 자가 그 폭력을 스스로 당한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558호 ‘미국 극우 찰리 커크 피격 사망: 자업자득이다’)
극우는 커크의 죽음에 복수의 기치를 들어올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직접 앞장섰다.
트럼프는 “급진 좌파의 언행”이 커크를 죽게 했다며 응징을 선포하고, 살해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을 (자백도, 혐의 입증도 없었음에도) “사형시키라”고 을러댔다. 로빈슨 일가가 극우 운동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이나, 로빈슨이 극우 ‘그로이퍼스’(극렬 유대인 혐오 입장에서 커크의 이스라엘 지지를 반대하며 커크와 오랫동안 반목해 온 집단) 지지자라는 의혹 등은 트럼프에게 하등 중요치 않았다.
트럼프는 커크를 추모하겠다며 관공서에 조기 계양을 지시했다. 트럼프의 부통령 JD 밴스는 미국 정부의 대규모 행사인 9·11 추모식 대신 커크 장례식장에 가 커크의 관짝을 들고 시체를 날랐다.

‘순교자’를 추어올려 무기로 삼는 것은 트럼프가 파시스트들의 병법서에서 가져온 수법이다. 1930년 나치당 준군사조직 갈색셔츠단 단원 호르스트 베셀이 살해되자, 히틀러와 나치는 이를 공산당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의 명분으로 삼았다.
마가의 극우 선동가 매튜 포니는 트럼프에 동조하며 “커크 암살은 미국판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라고 했다. 히틀러 정부는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국가 권력 장악을 굳히는 계기로 삼았다.
당시 히틀러는 이 일이 “하늘이 내린 계시”라며 공산당 등 좌파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불과 며칠 만에 공산당이 해산됐고 이후 수많은 사회당원, 노동조합 활동가, 정치적 반대자들이 체포됐다. 비상조치법이 제정돼 나치의 국가 권력 장악이 현실화됐다.
포니는 정부가 민주당을 해산하고 민주당 정치인들을 체포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트럼프의 측근이자 극우인 로라 루머도 “찰리의 유산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은 미국 국가의 막강한 힘으로 좌파를 분쇄하는 것”이라고 떠들었다.
또한, 공화당 소속 마가 정치인 닉 프레이타스는 “찰리의 죽음은 현재 진행 중인 투쟁의 성격을 마침내 분명히 일깨워 준 일로 기억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자 극우 조직 ‘프라우드 보이스’는 이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공유하고 커크의 유지를 잇는다며 “백인의 귀환”을 외치는 폭력 시위를 벌였다.
미국 국무부는 커크의 죽음을 비하한 미국 거주 외국인들의 비자를 문제 삼겠다고 했다. 그간 트럼프 정부는 이민자 단속·추방 기구들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격해 왔는데, 커크의 죽음을 명분 삼아 그 공격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한국 등 국제 극우 연계
트럼프와 미국 극우의 준동은, 트럼프가 미국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위기를 타개하려 권위주의적 조처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것과 연관 있다.(관련 기사: 본지 555호 ‘헤게모니의 위기 ─ 트럼프, 동의, 강압’)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미국인들의 생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악랄한 이민 통제 등의 영향으로, 커크가 죽기 직전 트럼프의 지지율은 정부 출범 이래 최저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극우 공격을 펴 최근 엡스틴 음모론과 이민 단속의 전술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은 지지층의 전열을 가다듬고 반대자들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
트럼프와 극우의 선동은 국제적 극우 연계를 타고 미국 밖으로 번졌다.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서 극우·파시스트들이 “우리 모두 찰리 커크다” 라는 구호를 걸고 집회를 열었다.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는 9월 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10만 극우·파시스트 집회에서 화상 연설하며 “좌파가 내 친구 찰리의 죽음을 대놓고 기뻐한다”며 증오를 불태웠다. “폭력이 다가오고 있다. 저항하지 않으면 죽는다!” 머스크의 선동에 파시스트들은 “우리는 모두 찰리”를 연호했다.
헝가리 극우 총리 오르반 빅토르, 프랑스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RN)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 이탈리아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 모두 커크를 추모하며 “증오를 퍼트리는 좌파”를 비난했다.
한국과 일본의 극우도 이런 국제적 흐름에 동조했다.
커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해외 극우인 일본 참정당 대표 가이야 소헤이는 “우리와 함께 미래를 건설하려 했던 헌신적인 동지를 기리자”고 했다. 커크가 9월 7일 방일해 참정당 행사에서 한 이민자 공격(“이민자들의 소리 없는 침공”)에 호응하는 것이다.
커크가 죽기 전 그를 한국에 초청했던 ‘빌드업코리아’ 대표 김민아는 커크가 죽은 날 “그의 희생의 피가 미국과 한국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생겨난 극우 단체 ‘자유대학’은 13일(토) 서울 강남역에서 “우리 모두 찰리 커크” 구호를 외치는 행진을 벌였고, 15일(월)에는 남대문에 커크 추모 거점을 세웠다.
커크가 방한 중에 방문해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추어올린 인천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도 극우들이 커크 추모 거점을 세웠다.
그들은 커크와 트럼프가 제시하는 제국주의적·극우적 의제들과 강하게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 극우가 미국(등 국제) 극우와 강하게 동조화돼 있고, 극우의 국제적 준동에서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쟁
마가의 핵심 인물인 파시스트 스티브 배넌은 “지금 미국은 전쟁 중”이라고 선포했다. ‘프라우드 보이스’는 이렇게 못박았다. “정면 충돌하는 두 세계관 사이의 전쟁에서 … 평화 공존은 불가능하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려스럽게도, 반트럼프 측의 대응은 그만큼 단호하지 못하다.
4년 전 미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극우에 살해당할 뻔한 민주사회당(DSA)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온건 진보 정치인들뿐 아니라, 올해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탄압에 맞서 전국 공동행동을 발의했던 ‘50501’ 같은 운동 단체들도 “일체의 정치 폭력에 반대한다”며 커크의 가족(극우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극우가 커크를 순교자로 추어올리며 좌파와 노동운동·사회운동 일체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에서, “망자에 대한 예우” 같은 공문구에 호소하며 사회적 평화를 도모하는 기성 정치식 대응은 그들의 선동을 정상화시키고 기를 더 살려 줄 것이다.
트럼프와 극우에 맞선 대중 투쟁을 크고 단호하게 건설하지 않으면 세계의 좌파·노동운동에 불리한 형세가 다가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