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란 무엇이고, 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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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스라엘의 학살을 멈추고자 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국제 사회’의 외교적 개입을 촉구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절멸되기 전에 제3자가 나서서 이스라엘을 말려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의 발로일 것이다.
그런데 ‘국제 사회’의 중재라는 생각은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 사실 그 ‘국제 사회’가 과연 무엇인지부터 따져 볼 일이다.
흔히 ‘국제 사회’는 유엔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흔히 그랬듯이 이 사태에 관해서도 유엔 개입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즉각 휴전을 촉구했지만 그 말은 무시되고 있다.
실제 힘은 유엔을 좌우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소속 5대 강대국들에 있는데, 이 강대국들의 뜻이 엇갈리면 유엔은 마비되기 십상이다(유엔의 역사에 관해서는 본지 기사 ‘유엔은 왜 침략 전쟁을 막지 못하나?’를 보시오). 지금도 바로 그런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번 사태에서 ‘국제 사회’의 개입을 촉구하는 것은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개입을 촉구하는 것일 테다. 이들 말고는 이스라엘을 말릴 처지에 있는 세력이 없어서다.(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서방 제국주의의 후원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미국은 사태 발발 직후부터 신속하게 이스라엘에 정치적·군사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다. 바이든 자신이 직접 이스라엘로 날아가 이스라엘의 학살을 비호했다(관련 기사 본지 478호 ‘도살자 네타냐후를 비호하는 바이든’). 미국은 “대응”이 이스라엘의 “의무”라고까지 했다.
미국은 자신의 중동 경비견 이스라엘이 수모를 갚을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보전하는 데 득이라고 여긴다.
미국의 서유럽 동맹국들인 영국·유럽연합도 이스라엘을 확고하게 편들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휴전을 촉구하지만 — 지난해 마크롱이 우크라이나 휴전 운운했을 때처럼 — 이 구상이 실현되리라는 기대는 본인에게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란-사우디 관계 복원을 중재했던 중국이라면 서방 국가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게도 우선적 고려 사항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커져 가는 역내 이해관계이고, 그 때문에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478호 ‘중국·러시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친구가 아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모두 알면서도 ‘국제 사회 개입’을 촉구하는 것은 강대국들의 합의와 압력만이 학살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는 절박한 생각 때문일 테다.
그러나 설령 강대국들이 어찌어찌 이스라엘을 설득해 모종의 평화 협정이 맺어진다 해도 그것은 기껏해야 막간극일 뿐 이스라엘의 억압을 실제로 멈출 수는 없다.
꼭 30년 전인 1993년 미국의 중재로 ‘두 국가 방안’이 골자인 오슬로협정이 맺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줄곧 팔레스타인을 유린했다. ‘국제 사회’는 실제로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가장 긴 전쟁들이었던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도 ‘국제 사회’의 개입은 아무 구실도 하지 못했다.
전쟁과 점령을 잠시라도 멈춘 진정한 힘은 점령당한 사람들의 불굴의 저항과 국제적 연대 운동에 있었다. 현재 팔레스타인 저항에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