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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위기는 노동계급 운동을 전진시킬 기회

11월 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두 개의 반윤석열 집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명태균-윤석열 통화 녹취 폭로 직후 대중이 윤석열 퇴진(탄핵)에 대한 기대로 고무됐음이 드러난 것이다.

민주당이 주최한 김건희 특검 촉구 집회에는 10만 명 가까운 인원이 모였다. 연단에서는 애써 김건희 특검 촉구로 요구를 제한했지만, 참가자들의 윤석열 퇴진(탄핵) 염원은 집회장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었다.

민주당 집회가 끝난 후 시청-숭례문 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촛불행동 집회는 최근 들어 가장 컸고(약 2만 명) 도심 행진의 기세도 뜨거웠다. 일반 참가자들뿐 아니라 민주당·조국혁신당·사회민주당 의원들도 참석했다. 이태원 참사 책임과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도 윤석열 퇴진 사유로 거론됐다.

민주노총·진보당·전국민중행동 등이 주도해 만든 또 다른 퇴진 운동체 윤석열퇴진운동본부(준)은 11월 9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를 대규모 윤석열 퇴진 총궐기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말처럼 노동계급 대중이 주도력과 견인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사진은 11월 2일 촛불행동 집회) ⓒ출처 촛불행동

진퇴양난 윤석열

윤석열은 11월 4일 국회 시정연설을 거부하고는 별도로 메시지를 내어 4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의료)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대중에게 전가하는 신자유주의적 개악들이다.

윤석열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어 서방 제국주의를 본격 지원하는 불장난을 벌이려 한다. 동시에, 호전적인 친서방 대외·안보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반미자주계 좌파를 탄압하고 있다.

지지율 추락 위기 속에서 윤석열이 버틸 명분은 우파와 기업주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데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지율이 너무 낮으면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이 연일 사설과 칼럼으로 걱정하는 것이 이 점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은 윤석열의 진퇴양난 상황을 보여 준다.

물론 우파나 기업주들이 윤석열 정권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는 아직 아니다. 여권도 내분 속 단합을 유지하고 있다. 한동훈이 4일 대통령 사과와 인적 쇄신을 요구했지만, 그의 강조점은 민주당의 장외 집회를 비난하는 데 있었다. 대구시장 홍준표도 윤석열 탄핵은 공멸이라며 단결을 요구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금 기회주의적으로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주말 장외 집회로 윤석열을 압박하더니, 4일에는 여권이 요구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수용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탄핵으로 직진하기보다는 위기가 지속돼 다음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얻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윤석열 때문에 지배계급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중도 보수까지 아우르는 ‘책임감 있는’ 미래 국정 운영자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한다.

또한 모처럼 윤석열 퇴진 열기가 거리 집회로 표현될 조짐을 보인 상황에서 김건희 특검 쟁점으로 축소하려 하거나, 임기 단축 개헌 운운하는 것은 정권과의 싸움에 진지한 투지가 있는지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다.

불평보다는 기회를 살려 기층 투쟁을 고무해야

결국 윤석열의 반동적 공세를 확실히 좌절시키려면, 윤석열의 위기를 이용해 대중 투쟁이 더 커져야 한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캠퍼스에서.

좌파와 노동운동은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날로 심각해지는 생계비 위기에 맞서 사회·경제적 요구를 내세우며 투쟁을 더 키우는 동시에, 그런 사회적 투쟁들을 노동계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이 금투세 폐지처럼 개혁 염원을 공염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애써서 윤석열 퇴진을 위한 운동에 동참할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좌파 일각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을 민주당 집권 돕기 운동이라는 식으로, ‘신 포도’ 취급하는 것은 무책임한 회피이다. 자기에게 선거적 이득이 오지 않을까 봐 중요한 전장에서 도망가는 것에 불과한 것을 좌파적 수사로 포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윤석열 퇴진 투쟁에 동참하길 꺼리는 것도 정치적 도피일 뿐이다. 지배계급은 복합 위기의 현 시기에 개악을 추진하려고 윤석열 정부를 아직도 지지하는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라지만 좌파가 무책임하게 윤석열 퇴진 운동에 진지하지 못할수록 민주당만 반사이익을 얻기가 쉬워진다.

한편, 윤석열 퇴진 운동이 국회 탄핵을 목표로 하는 것도 민주당 의존, 보수 정치인 합류 기대, 보수적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용단을 기대하는 것으로 대중의 자주적 행동을 제약한다. 이 요구의 함의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다음 말에서도 드러난다. “[탄핵을 위해서는] 야당 외에도 보수 진영 내에서도 현 정권을 부끄러워하는 세력까지 아우르는 다수파 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에 적극 앞장서 운동의 구성·요구·방법이 노동계급적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좌파에게 진정 필요한 자세다.

2016년과 무엇이 다른가

한편, 민주노총·진보당·전국민중행동 등이 주도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준)는 윤석열 퇴진 10만 총궐기를 선포했다. 이 집회가 성공하면 노동자 운동도 좀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이 “박근혜 정권 몰락의 서막인 최순실 태블릿PC가 보도되고 박근혜 지지율이 20퍼센트 이하로 폭락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윤석열 정권은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돌파구를 열었고(특히 철도 파업), 새누리당이 분열하고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이미 즉각 퇴진 시위가 서울에서만 130만 명에 이르렀다. 좌파들이 시작한 퇴진 운동에 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들이 대중의 눈치를 보며 뒤늦게 슬금슬금 끼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계급 대중이 주도력이나 견인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노총·진보당·정의당 등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촛불행동과의 연대도 기피하는 바람에 좌파 측 퇴진 운동이 둘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윤석열의 위기는 상황을 바꿀 가능성을 보여 준다. 개방적으로 연대하며, 생계비 저항과 노동계급의 기층 투쟁을 고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