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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윤석열 외교, 핵심 문제는?

이 글은 5월 3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과 바이든은 한미동맹을 “글로벌”하고 “포괄적”인 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양국이 동북아시아를 뛰어넘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안보뿐 아니라 국제 정치와 경제 등 폭넓은 문제들을 놓고 협력하겠다는 뜻이다.

윤석열이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대만 문제 등이 이런 문제에 해당한다. 그는 이 문제들에서 확고하게 미국 편을 표명한 뒤 미국으로 향했다.

이 인터뷰는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중국과 러시아의 격앙된 반응을 불렀지만,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도 같은 내용이 담겼다. 또, 한·미 정상은 전략핵잠수함 등 미국의 핵무기를 더 자주 한국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이것도 중국의 반발을 샀다.

윤석열이 취임한 지 1년이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친미 일변도이자 갈등을 증폭시키는 외교 폭주를 우려한다. 윤석열 정부가 왜 이런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어떤 모순과 위험을 키우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윤석열의 외교 1년

우선, 윤석열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어떤 맥락 속에서 외교 정책을 펴 왔는지 돌아보자.

두루 알다시피,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은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핵심 문제다. 미국은 신흥 강자인 중국의 경제적·지정학적 도전을 제압하려 한다. 반면 중국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봉쇄 시도에 균열을 내려 한다.

이런 추세가 15년 넘게 발전하는 와중에 지난해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을 결속시켜 나토가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게 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 강화에 공을 들여 왔다.

미국은 이와 같은 패권 유지 전략에 한국도 동참하기를 바라며 압박해 왔다. 대중국 봉쇄를 위한 경제·안보 협력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등을 요구했고, 미·일 동맹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한·일 관계 개선도 촉구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 유지에 협력하는 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기회라고 한국 정치인들을 설득해 왔다. 그들 중 일부는 서방 강대국들의 모임인 G7에 한국을 추가해 G8으로 확대하자는 유인성 제안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 쪽으로 확고하게 기우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유지되도록 협력하는 게 한국 자본주의에 더 이롭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아직 최선진국들은 따라잡지 못한 채 신흥국들의 추격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이고, 남·북한 대치로 안보 불안정도 만만찮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전력 강화를 한미일 동맹 강화가 필요한 이유로 꼽는데, 이것은 단지 핑계가 아니다. 북핵 대응을 위해 미국의 안보 공약이 더 중요해졌고, 윤석열은 미국으로부터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 등의 약속을 받아내고 싶어 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등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에 편승해 중국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는 효과를 얻길 바란다.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들에서 중국 기업들이 경쟁자로 떠올라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은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미국 오리지널과 똑같은 제목의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며 미국과의 협력을 발전시킬 의지를 보여 줬던 것이다. 미국과 똑같은 용어를 사용해 “전체주의”를 비난하고 “가치 동맹”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미국을 돕는 중요한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윤석열이 결단한 한·일 관계 개선은 미국이 바라 마지않던 일이다. 이를 위해 윤석열이 내놓은 강제동원 ‘해법’은 일본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어서 국내에서는 반감이 컸다. 반면 바이든 정부는 윤석열의 “용기”를 거듭 칭찬했다.

지난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협력을 재확인했다. 이는 5월 7일 열릴 한일 정상회담과 5월 21일 개최될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에 합의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윤석열의 외교가 처할 난맥상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공공연히 적대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계속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미국 쪽으로 확고히 기우는 도박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챙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 외교를 둘러싼 대외적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오늘날의 세계는 냉전 때와는 사뭇 다른 조건에 놓여 있다. 한·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냉전 시기에 미국은 대소련 전초기지인 한국에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했다. 한국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과 밀착함으로써 성장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이것은 미국 자신의 이해관계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지배계급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2000년대 동안 한국은 중국과 긴밀히 경제적 관계를 맺으며 경제 성장을 이뤘다. 중국은 한국 기업들의 광활한 시장일 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향한 생산의 주요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과 중국의 적대가 점점 첨예해지자 한국 지배계급의 고심은 깊어져 왔다. 한미동맹이 제공해 온 경제적·안보적 이익이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신규 투자에 대한 규제를 부분 완화했다. 그러자 삼성 이재용과 SK 최태원은 즉시 중국으로 갔다. 이 일화에서 보듯이, 한국 자본가들은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면서도 중국 시장을 놓치고 싶지 않다.

한국 자본가들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에게 반도체 보조금과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 규제 문제에서 양보를 얻어 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경제 문제에서 빈손으로 왔다. 물론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디딤돌 삼아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지배계급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모순은 단순히 외교 수완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가 발전해 온 것의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냉전 시기와 달리 한국에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보장할 능력이 없다. 한국을 중국에서 떼어내려 하지만 중국 시장을 대체할 시장을 제공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설사 미국이 한국과 몇몇 주요국 경제를 중국에서 떼어내는 데 일부 성공한다 해도, 윤석열의 도박은 한국 지배계급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의 시도가 초래할 기존 공급망 교란과 세계 경제 불안정 증대는 한국 경제에 어려움을 가져오고 모순을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

윤석열의 외교 정책은 평범한 한국민들에게 위험과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과 윤석열은 ‘워싱턴 선언’을 발표해 ‘확장억제’ 강화를 공식화했다. 윤석열은 이것이 북핵 위험 앞에서 단행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확장억제란, 유사시 미국이 핵무기와 재래식 전력을 동원해 동맹국을 방어한다는 개념이다. 한미 양국은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핵협의그룹(NCG)을 설립해 핵전력 운용 논의와 정보 공유를 상시 제도화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핵협의의 실질성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략핵잠수함 등 미국 핵무기가 한국에 더 빈번하고 정례적으로 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전략 폭격기도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 핵무기를 한반도로 들이는 정책이 과연 평범한 한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까?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역효과를 낼 뿐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쿠바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의 위협에 직면해, 소련과 동맹을 맺고 소련 핵미사일을 자국에 배치하는 데 동의했다. 쿠바 정부는 소련 핵무기가 미국에 대한 억지 수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쿠바는 냉전의 최전선이 됐고, 핵전쟁 위기에 휘말렸다. 미국과 소련 양측이 막판에 한발 물러서지 않았다면, 쿠바 국민은 물론이고 인류가 핵전쟁으로 공멸할 뻔했다.

쿠바 위기 같은 일이 오늘내일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워싱턴 선언’은 주변국들을 자극해 불안정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이는 비단 북한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국제 정치에서 핵무기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핵전력 격차를 줄이려고 핵탄두 규모를 늘리고 있다. 미국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오커스 동맹 차원에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건설을 지원하기로 했고,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도 호주에 배치할 예정이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B-52 폭격기 배치를 위한 군 시설도 호주 북부에 건설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워싱턴 선언’은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핵전력 전진 배치를 강화하는 조처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은 한미 핵협의그룹을 한·미·일 3국 확장억제 협의체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중국은 ‘워싱턴 선언’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에 나설 것이다.

미국 핵무기의 한국 배치는 역내 군비 증강도 부추길 것이다. 그로 인해 노동자 등 서민층의 조세 부담이 커지고 복지가 희생될 공산이 크다.

한·미 양국이 우크라이나에 “안보 지원 제공”을 하기로 합의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의 또 다른 문제다. “국력에 걸맞은 기여”로 “국제사회 내 위상”을 높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군사 지원은 앞으로 더 과감해질 수 있다.(윤석열 자신도 전황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계획에 나토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는 나토 회원국들이 “장갑차 1550대, 전차 230대 외에 엄청난 양의 탄약을 보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이 군사 지원을 보태는 것은 전쟁이 격화되고 확대되는 데 일조할 뿐이다. 이미 1년 넘게 소모전이 진행되고, 핵전쟁의 공포도 너울거린다. 윤석열의 군사 지원은 이 전쟁이 예기치 못한 위기로 치닫게 일조할 뿐이고,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게다가 그 위기는 대만해협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윤석열 외교에 대한 민주당과 좌파 측의 비판

이처럼 윤석열의 외교가 한반도와 주변의 불안정을 부추기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이 미국과 너무 밀착해 “국익”과 안보에 손해를 끼친다고 비판한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균형 외교”를 대안으로 추구해 왔다. 한미동맹을 우선하되 중국·러시아와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한국이 적극적인 균형자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지낸 문정인 교수가 그런 인물이다.

적극적 균형자론은 중견국들의 협력을 모아 미·중 진영 대결이 아닌 새로운 다자 협력 질서를 만드는 데 한국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남북 관계를 개선해 한미동맹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노선은 “미·중 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전략”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계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강대국들의 경쟁을 장기적으로 제어할 다자 협력은 가능하지 않다. 중견국들도 경쟁과 자본 축적의 필요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군사적·경제적 경쟁에 뛰어들었고, 거기서 중간적 플레이어들이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한두 제국주의 국가와 협력하고 있다.

문정인 교수 자신도 한미동맹 유지는 기본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설정한 한미동맹의 성격·범위·과제 때문에 한미동맹이 다자 협력과 원만히 조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는커녕 미·중 갈등이 악화될수록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들도 미국으로 기운 윤석열의 외교를 비판하고 있다. “친일 굴욕외교,” “친미 조공외교”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좌파의 일부는 한국이 더는 한미동맹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며 브라질이나 튀르키예처럼 동맹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을 추구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중국과 신흥국들 중심의 “호혜와 평등의 새 질서”로 교체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중국의 부상이 이런 질서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은 서로 다른 체제 간의 충돌이 아니고, 자본주의 체제 내의 경쟁이다. 중국에 기대를 거는 것은 기존 체제 내에서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기대를 거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일대일로 등 중국이 다른 국가와 맺는 관계를 보나, 노동자 착취로 경제를 성장시킨 방식을 보나 중국에 기대를 걸 이유는 없다.

제국주의에 균열을 낼 잠재력

오늘날 우리는 강대국들이 노골적으로 서로 견제하고 다투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윤석열은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평범한 한국민들에게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다.

미·중 제국주의 갈등의 한 축에 끼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고, 미국 핵무기를 한국에 들여오고, 대만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평범한 한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뿐 아니라 세계적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거나, 다자 협력 질서를 추구하거나, 중국 중심의 새 질서에 기대를 거는 것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대안은 제국주의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하는 제국주의 강대국 중 어느 한 쪽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그래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제국주의 갈등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만큼, 노동자 투쟁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반대한다면, 제국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데서도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