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앞으로 다가온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COP26):
기후 위기: 세계 정상들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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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열린다.
오늘날 기후 혼란은 중대한 고비에 이르러 있다. 지구가 빠르게 더워진다는 증거가 쏟아지고 있다. 최대한 근본적인 조처를 취해야만 재앙을 피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서 그런 조처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를 지난 기후변화정상회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본다.
최초의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는 1995년이 돼서야 열렸다. 이것도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1970년대부터 온실가스 배출에 우려를 표해 왔지만, 세계 지도자들은 1990년대가 돼서야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1994년이 돼서야 비로소 기후 문제 대응에 착수하기 위한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UNFCCC)이 발효됐다.
“COP”는 ‘당사국 총회’라는 뜻으로, UNFCCC를 이행하고 점검하는 기구다. 이 정상회의에는 UNFCCC 회원국들 대표들과 특별 선임된 NGO·과학자들이 참가한다. 올해 열릴 COP26에는 197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1995년 제1차 COP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여기서 채택된 최초의 결정문은 기후 위기의 성격에 관한 부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진실을 확인했다. “기후 변화의 세계적 성격 때문에 모든 국가가 가능한 한 폭넓게 협력하고, 유효하고 적절한 국제적 대응에 참여해야 한다.”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각국이 200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도를 일체 기각했다. 자국의 경제 성장에 너무 큰 제약을 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 지도자들은 2000년을 목표치를 달성하는 해가 아니라, 대처를 시작하기에 좋은 해로 설정했다.
제1차 COP의 마지막 날 참가국들은 ‘베를린 위임사항’을 타협안으로 서둘러 채택했다.
교토의정서
이 문서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향후 5년 안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목표치를 설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1998년 제3차 COP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는데, 몇몇 기후 운동가들은 이것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토의정서는 37개 공업국에 각각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자신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시한다는 것이었다.
교토의정서에 담긴 거창해 보이는 약속들에도 불구하고 당사국들은 전혀 이행을 서두르지 않았다. 교토의정서는 2005년이 돼서야 발효됐다. 그리고 2008년, 즉 이 의정서가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지 10년도 더 지나고 나서야 첫 의무 이행 기간이 시작됐다.
그러나 1990~2010년 사이 온실가스 배출량은 32퍼센트나 더 늘어나도록 방치됐다. 이 기간 중에 나타난 소폭의 감소는 2007~2008년 금융 공황 때문이었다. 지배자들은 교토의정서가 복잡한 관료적 절차 때문에 시행이 늦어졌다고 둘러댈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이 취해야 할 조처를 미루려고 고안된 것이다. 실질적인 조처는 없는 채 휴지 조각이 되고 있는 의정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동안, 기후 변화에 대응할 시간이 9년이나 허비됐다.
COP 행사 이후에는 늘 실질적인 조처가 뒤따르지 않았다. 회의 과정 전반이 제약에 매이고 한계를 드러냈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속을 위한 한계 내에서 작동하는 기구였기 때문이다.
COP는 필요한 조처에 관해 입에 발린 말을 한다. 그것이 이윤과 축적에 대한 지배자들의 탐욕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말이다.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 위기가 인류에게 몰고 올 당면 위협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공저자들은 “지구 온난화는 그 증거가 뚜렷하며, 인류의 활동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각국이 협력한다면 희망이 있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실질적인 기후 변화 적응”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세계 GDP의 최대 0.12퍼센트”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무시
과학자들은 세계 지도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경고와 구명 밧줄을 모두 건냈지만, 권력자들은 이를 무시했다.
같은 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13차 회의에서도 각국은 늘 그랬듯이 말다툼이나 벌였다.
그 회의에서 유일하게 나온 실질적인 결과는 구속력 있는 합의안을 2년 후에나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2년이 지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COP가 열렸다. COP의 역사에는 여러 “중대 회의”가 있는데, 코펜하겐 회의도 그중 하나였다.
기후 운동과 시민사회는 구속력 있는 합의가 마침내 체결되리라 믿고 진심으로 이 회의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또다시 산산조각 났다.
조금치라도 구속력 있는 합의에 이르기 위해 각국이 벌인 쟁투는 길고 지리했다.
교토의정서가 그런 사례였다. 2012년에 의정서의 효력을 갱신하려는 움직임은 바로 다음해에 무산됐다. 세계 지도자들은 자그마치 21년 동안 티격태격하다가 마침내 모종의 구속력이 있다고 하는 협약을 맺었다. 그것이 바로 파리기후협약이다.
파리기후협약은 2016년 제21차 COP에서 196국에 의해 채택됐고,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 좋기로는 1.5도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각국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5년마다 얼마나 감축할지를 제시하는 첫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인국들 중 겨우 75개국만이 올해 제출 기한에 맞춰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고작 16개국만이 공약된 목표치를 달성하기에 충분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20여 년에 걸친 무익한 회의들 끝에 나온, 구속력이 있다는 이 협약은 결국 이전 협약만큼이나 엉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세계 지도자들은 파리기후협약 합의를 자화자찬했고, 실질적 조처를 거의 제안하지 않는 정상회의를 이후 세 차례 더 열었다.
올해 11월에 열릴 제26차 COP도 “중대 회의”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번 회의는 IPCC 6차 보고서 발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지구온난화가 촉발한 과정들 중 많은 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회의의 개최국인] 영국의 총리 보리스 존슨은 다가오는 정상회의를 “지구와 인류에게 중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되고 무대응이 계속된 지난 20여 년을 볼 때, 제26차 COP 역시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상응하는 조처를 내놓지 못할 공산이 크다.
지배자들의 무대응과 위선에 맞선 시위의 역사
COP의 역사는 기후 위기 대처에 앞장서는 것처럼 구는 세계 지도자들의 무대응과 늑장으로 점철된 역사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이를 그냥 보아 넘겼던 것은 아니다.
COP는 줄곧, 기후 변화에 대한 무대응만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체제 자체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계기가 됐다.
호화로운 회의장 앞에서는, 그 회의에 참가한 세계 지도자들에 의해 가난으로 내몰린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가 벌어져 왔다.
회의장 내의 난맥상은, 회의장 밖 시위대를 진압하는 국가 폭력과 극명한 대비를 이룰 때가 많았다.
2009년 제15차 코펜하겐 COP 때는 회의장 밖에서 기후 운동가 약 10만 명이 맹렬한 시위를 벌였다.
〈소셜리스트 워커〉는 당시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보도했다.
“덴마크 시위 진압 경찰은 여러 도로로 시위대를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일부 시위 대열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전술을 펴고, 새로 제정된 ‘선제적 체포’법에 근거해 거의 1000명(시위 참가자의 1퍼센트)을 체포했다.”
2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COP 때는 시위 규모가 비교적 작았지만 활력은 다른 시위들 못지 않았다.
1만 명 넘는 시위대가 더반 거리에 나와 COP가 내놓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했다. 한 회의장으로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한 활동가들은 기후 위기가 아프리카 전역에 죽음을 몰고 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팻말을 쥐고 흔들었다.
2015년 제21차 파리 COP 때도 대규모 시위대가 정부의 불허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에 나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국제적으로] 기후 운동이 크게 성장했다. 여기에는 2018년도 유엔 IPCC 보고서도 일정한 구실을 했다. 이 보고서는 평균 기온 상승폭을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조처가 시급하다고 권고했다.
툰베리
COP에 참가한 통치자들은 이 운동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연설자로 초청했던 것이다.
현재 세계 지도자들, 예컨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환경을 걱정하는 수많은 미국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후 변화 대응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비쳐야 한다는 압력을 점점 더 크게 받고 있다.
하지만 시위의 중요성은 단지 정책 입안자들에게 개혁을 시행하도록 압력을 넣는 데에만 있지 않다. 시위는 다른 종류의 체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기회다.
국가가 탄압 능력으로 일반 대중을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느라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체제가 가능함을 주장할 기회인 것이다.
이번 제26차 COP가 열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망은 회의장 안이 아니라 밖에 있을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에 어깃장을 놓아 온 강대국들
국제적으로 환경 오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이 COP에서 어깃장을 놓아 온 오랜 역사가 있다.
2007년 제13차 발리 COP가 그런 사례다. 당시 미국 대표단이 지연 전술을 써 회의 진행을 가로막으면서 회의장에서 긴장이 고조됐다.
파푸아뉴기니 대표 케빈 콘라드가 미국 측에 이렇게 말한 것은 유명하다. “당신들이 이끌 수 없으면 우리에게 맡겨라. 제발 길을 막지 말고 비켜라.”
하지만 미국의 전술은 통했다. 미국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퍼센트 감축하자는 제안을 사실상 저지했다.
강대국들은 COP에서 막무가내로 약속을 미루고 최소한만 약속하려 했다. 경악스럽게도, 미국과 중국은 2014년이 돼서야 온실가스 감축을 겨우 약속했다.
이런 나라들은 어떨 때는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고 강력한 블록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서로의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
2001년에 미국은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개발도상국들이 의무 이행 대상국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말이다.
2005년에는 미국 주도로 새로운 협약 ‘청정 개발 및 기후에 관한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APP)이 출범했다. 이 협약에는 호주·캐나다·중국·인도·한국이 서명했다.
미국은 이 파트너십이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안적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안적 전략’은 기후 변화 대응 목표 이행을 회원국들의 의무로 두지 않았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 파트너십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성과 지향적 파트너십으로서, 각국이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그 적용을 가속시킬 수 있게 해서, 빈곤을 줄이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국가적으로 오염을 감축하고 에너지 안보를 실현하고 기후 변화 우려에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청정 개발 및 기후에 관한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은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들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벌인 또 다른 시도였을 뿐이다. 즉, 친환경적으로 보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구속력이 있다고 하는 파리기후협약에 서명한 최대 환경 오염국들은 이런 행태와 단절한 것처럼 언뜻 보일 수도 있다.
서명
그러나 그런 나라들이 파리기후협약에 서명한 것은, 경제가 덜 발전한 나라들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 됐기 때문임을 봐야 한다. 게다가 미국은 2017년에 당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결정으로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해 3년 동안 협정 바깥에 있었다.
이윤 추구는 COP 회의장에서 언제나 기본 전제로 여겨졌다. 특히 세계 최강국들에 의해 그렇게 됐다.
그런 나라들에게 경제적 지배와 제국주의 경쟁은 언제나 환경 보전보다 중요했다. 국가 간 갈등과 경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유의미한 진전이 불가능하다.
경제 성장과 제국주의 갈등을 지속시킬 COP 과정은 이 체제에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불충분할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