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특검 수사 결과:
헌정 절차 존중은 내란 청산과 모순된다
〈노동자 연대〉 구독
비상계엄에 따른 내란·외환 의혹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이 수사 기간 종료에 따라 12월 15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30명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로 180일이라는 역대 최장기간 수사를 벌였는데, 특검은 대중의 내란 청산 염원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내놨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정치적 반대 세력 제거를 위한 “친위 쿠데타”였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군부와의 유착을 강조했다.
“취임과 함께 대통령실을 용산 군 기지 내 합동참모본부 청사 바로 옆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관저를 한남동으로 이전[해] ... 대통령이 군지휘부와 함께 군 기지 내에[서] ... 밀착되는 여건이 조성[됐다.]”
“군을 통해 무력으로 정치활동 및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국회를 대체할 비상입법기구를 통해 입법권과 사법권을 장악한 후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유지할 목적[이었다.]” 노상원 수첩에는 이를 “모든 좌파 세력 붕괴”라고 적어 놨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비정상적 군사작전을 통해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하였으나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군사 쿠데타’라는 성격 규정은 특검의 구멍 숭숭 기소를 보여 준다. “사초를 쓰는 자세로 세심하게 살필 것”이라더니 그 한계가 역력했던 것이다. 한덕수, 조태용, 최상목, 박성재 등이 새로 기소됐지만 대체로 경미한 혐의들이고, 군과 사법부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특검의 빈약한 수사-기소 결과는 ‘헌정 절차 안에서 그 절차를 하나하나 존중해 가며 국가기관 내 친위 쿠데타 세력을 처단한다’는 개혁 정부의 한계를 드러냈다.
1. 내란 청산에 저항하는 사법부가 최후의 심판자?
계엄 선포 직후 대법관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을 조희대·천대엽도 부인하지 못했는데, 특검은 계엄 협조 회의를 연 적이 없다며 그 둘을 불기소 처분했다.(특검의 말이 사실이라면 쿠데타 당일 대법관들이 계엄사령부에 협조하려는 회의를 새벽까지 열었다고 한 〈연합뉴스〉·〈조선일보〉 보도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법원은 특검이 청구한 영장의 상당수를 기각함으로써, 수사 확장을 방해하며 오히려 특검을 길들이려 했다. 결국 한덕수, 박성재, 김용대, 추경호 등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법원은 내각, 대통령실, 검찰, 군, 국민의힘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좌절시켰다.
그래서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국힘에서는 추경호와 임종득만 기소됐다. 당시 윤석열과 통화한 나경원을 포함한 국힘 의원 전원은 무혐의 처리됐다. 특검 발표로도 윤석열은 2022년 말 국힘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싹 쓸어버리겠다”면서 비상계엄 의지를 진작 드러내 왔는데 말이다.
2. 국가 안보에 대한 고려
전시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려고 북한을 선제 공격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군에서 벌어졌는데도 이 문제로 재판에 넘겨진 군인은 드론작전사령관 김용대 1명뿐이고, 그조차 고작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특검 스스로 정치적 고려를 했음을 인정했다. “외환 사건의 경우 국가 이익을 우선에 두고 군사 작전이 위축되지 않도록 기소 대상자 등 결정[했다.]”
2024년 7월 당시 합동참모본부 차장 강호필이 윤석열에게서 계엄 선포 의향을 전해 듣고 당시 국방장관 신원식에게 보고하는 등 합참이 무인기 작전시 계엄 음모를 몰랐을 리 없는데도, 해당 작전에 연루된 합참 간부들 모두 기소를 비껴갔다. 그들 중 하나라도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항명한 자가 있었던가?
3. 전쟁 유발 행위(외환죄)를 처벌할 수 없는 법 체계
윤석열 등에게 적용돼야 할 외환유치죄(우두머리는 사형과 무기징역 뿐)는 북한과의 의식적인 공모를 입증해야 하는 조항이라 애초에 적용되지 못했다. 즉, 한국 형법 체계는 외국 군대의 침략에 협조한 죄만 있고 국내에서 먼저 전쟁을 일으키려 한 것은 죄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김용현 등에게 이적죄를 대신 적용했는데, 이적죄는 애초 이런 중범죄를 다루는 법 조항이 아니어서 형량이 낮다.
그래서 쿠데타를 합헌·합법적으로 일으키려고 사실상 전쟁을 부르는 군사 도발을 했는데도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의 합법 권한을 이용한 쿠데타였다는 점 때문에 기소된 장성들에게 군사반란죄도 적용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명령권자인 대통령이 내란우두머리라면, 그를 따른 군인들에게 군사반란죄가 적용되는 것이 옳다.
대통령실 안보실 1차장으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실세였던 김태효도 그 과정에서 수사망을 피해 갔다. 야당·좌파 살해 임무와 연관된 HID 부대를 방문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복귀했다.
김태효의 안보실 직속상관이자 국정원장이었던 조태용에 대한 수사도 미진하다. 쿠데타 다음날 미국에 가 CIA 국장을 만나려 했던 그의 죄가 고작 국회에 계엄 사실을 즉시 통보하지 않은 것뿐이겠는가.
대통령실이 극우 세력의 한남동 시위, 서부지법 폭동 등을 사주한 혐의도 무혐의 처리됐다.
4. 특검 구성의 한계
특검 구성의 한계가 수사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윤석열 구속 취소에 항고를 포기한 전 검찰총장 심우정과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팀에 대한 수사는 특검팀에 수사 대상인 검사들이 다수 포함돼 수사를 할 수 없었다. 이 혐의 수사는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이첩됐다.
사실 특검의 의지도 일부 미심쩍은 면이 있었다. 특검은 한덕수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는 누구도 해치지 않고 정치적 토론과 주장을 했을 뿐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청주 평화 활동가들, 석권호 전 민주노총 간부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0년을 구형 받은 것과 비교해서 부당하게 관대한 구형이다.
보통, 검찰 구형보다 판사 선고 형량이 낮고, 한덕수의 형량이 무겁게 나올수록 윤석열의 형량도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덕수의 낮은 구형은 윤석열에게 유리한 것이다.
특검의 수사·기소·구형 등이 이런 식이면, 내란 전담 재판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5. 미국과 주한미군의 관련성 규명의 한계
특검은 12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한 것은 미국의 대선 후 취임 전 혼란기를 이용해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의 경우를 고려했다는 것인데, 특검의 발표는 미국이 쿠데타를 반대했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한 책임 규명 포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사실 외환(전쟁 유발) 혐의와 관련해 주한미군도 수사 대상이다.
윤석열 세력이 극우 트럼프의 당선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트럼프가 한덕수에 힘을 실어 준 점을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진영은 아르헨티나 극우 대통령 밀레이, 독일 파시스트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브라질의 쿠데타 미수 전직 대통령 보우소나루를 지원해 왔다. 지난 1년간 미국 마가 진영과 한국 극우 사이에 친미반중 음모론을 매개로 한 유착도 드러났다.
아래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대안
요컨대, 내란 특검 6개월은 법과 법원 등 헌정 절차에 의지해 친위 쿠데타 세력을 처단하는 것이 모순에 가득찬 질곡의 길임이 확인된 시간이다.
내란 청산이 지지부진하자, 이제 국힘 지도부 안에서는 국회 진입 계엄군이 당시 저항하는 정치인과 시민들에게 발포했어야 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내란 청산 염원의 진정한 실현은 국가 내 안정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복합 위기 심화 국면에서 정치 안정을 바란다.
여권은 자본가들의 필요와 국힘과의 경쟁, 대중의 염원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동요하고 있고, 주류 좌파들도 헌정 절차 존중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내란 청산 염원이 헌정 절차보다 더 존중되고 우선돼야 한다.
아래로부터 투쟁이 해결책이고, 특히 노동계급 대중이 거리와 일터에서 민주적·경제적 요구들을 내놓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