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약점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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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금융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는 4월 3일 자동차·철강·알루미늄에 25퍼센트의 품목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5일부터 모든 나라에 보편관세 10퍼센트를, 9일부터는 57개국에 상호관세 10~49퍼센트를 부과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급격한 관세 인상에 대한 우려 때문에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 이어 미국 국채 가격까지 하락하자 결국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 겨우 13시간 만이었다.
그 대신 보복관세를 매긴 중국에만 상호관세를 125퍼센트로 올렸다. 이미 펜타닐 원료 수출을 이유로 부과한 20퍼센트 추가 관세까지 합하면 중국에는 145퍼센트 추가 관세를 매긴 것이다. 중국 정부도 보복관세로 미국 수입품에 1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했고, 자동차·반도체·항공 산업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을 통제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한 직후 “채권시장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이 약간 불안해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미국 국채 가격 하락을 우려해 관세 유예를 발표했다는 뜻이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도 “대통령과 나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상호관세가 예고된 4월 4일 연 4퍼센트 수준에서 일주일 만에 4.5퍼센트 수준으로 뛰었다. 국채 금리 상승은 곧 국채 가격 하락을 뜻한다.
이처럼 상호관세 발효 직후에 미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자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미국 국채를 내다 판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외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8조 5000억 달러다. 그중 중국 정부가 보유한 미 국채는 7600억 달러어치로, 1조 790억 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바로 다음이다.
그러나 실제 중국 정부가 미국 국채를 팔아 가격 하락을 조장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정부가 직접 보유하지 않고 벨기에 등 다른 국가에 맡겨 운용하는 미국 국채 물량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이번 가격 하락은 미국 국채 관련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온 헤지펀드들이 미국 국채를 투매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 월가에서는 일본계 자본을 운영하던 헤지펀드가 큰 손실을 보면서 강제로 국채를 내다 팔게 돼 국채 가격이 급락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경기 침체와 재정 적자
그러나 미국 국채 가격이 급락한 진정한 원인은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 때문에 미국 경기 침체와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코로나 팬데믹 대응과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 왔다. 그 결과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퍼센트에 이르는 수준이 됐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채무 때문에 국채 이자로 지불되는 돈만 해도 미국 국방비보다 많은 수준이다. 트럼프 정부는 내년까지 미국 GDP 대비 30퍼센트에 이르는 9조 달러 정도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또다시 국채를 찍어 내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로 미국의 소비가 줄어들고 기업들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조세 수입이 줄어들고, 그러면 미국 정부는 더 많은 국채를 찍어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결국 국채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으니 헤지펀드들이 미리 미국 국채를 내다 판 것이다.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뿐 아니라 민간에도 직격탄이 된다. 주택담보대출, 신용 대출, 기업 대출 등이 모두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출 금리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 조짐이 보이면서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편, 트럼프 정부의 조변석개하는 관세 정책이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여러 기업들은 자고 나면 바뀌는 관세 때문에 투자를 언제 해야 할지, 생산 시설은 어디에 둬야 할지 정할 수 없다고 불평을 터트리고 있다.
4월 11일에는 반도체·스마트폰·컴퓨터 등 일부 품목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 알려졌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컴퓨터 등이 관세 적용을 유예받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왔다. 그러자 트럼프는 즉각 스마트폰이 무관세 적용은 아니라고 발표하고, “다른 관세 ‘버킷’으로 이동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도 반도체 항목에 포함해 향후 별도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지, 아예 면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스마트폰 품목별 관세는 중국산 제품에 일괄 부과된 145퍼센트 상호관세에 비길 바가 안 된다. 중국에 부과한 고율 상호관세에 직접 타격을 받을 거대 미국 기업 애플을 구제하기 위해 관세를 낮춰 준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약 87퍼센트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4월 14일에는 자동차 부품 관세도 유예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 국내로 자동차 산업을 유치하겠다며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를 매겼지만, 한국·일본·독일의 자동차 기업들뿐 아니라 해외 공급망을 이용해 자동차를 생산해 온 GM·스텔란티스 같은 미국 자동차 업체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되자 일정기간 관세를 유예해 주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행보는 미국 거대 기업들의 수익성에 타격을 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효율적인 생산 네트워크와 숙련된 노동력을 찾아 수십 년에 걸쳐 해외에서 생산 시설을 늘려 온 주체였다.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고 제조업 역량을 높인다며 관세 폭탄을 터트리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의 이윤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때마다 움찔 놀라며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세를 이용한 압박 정책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을 굴복시키고,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얻어 내려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앞으로도 세계경제의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