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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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세계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혁명으로 이어질 조건들이 존재했고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발하자 전세계 곳곳에서 투쟁을 고무했던 것이다.
상층계급 사람들은 그 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자원을 쏟아 부었다. 약 14개 국의 군대가 러시아로 쳐들어가 반혁명 세력인 백군을 지원했다.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서 영국 총리가 되는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
지배자들은 온갖 악선전을 해 혁명에 대한 지지 여론을 꺾으려 애쓰기도 했다.
처칠은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짐승 같은 야만 상태”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신문들은 볼셰비키가 한 시간에 500명을 참수할 수 있는 전기 단두대를 페트로그라드에 설치했다고 떠들어 댔다.
공포
1919년 2~3월, 미국 상원 소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고 소위 ‘볼셰비키 공포’에 대해 다뤘다.
역사가 프레드릭 루이스 슈만이 말했듯, 당시 청문회는 혁명 러시아를 “노예들이 살인광들의 지배 아래 처참하게 살아가는 아수라장 같은 곳”으로 묘사했다.
볼셰비키가 “자유연애”를 부추기고 여성을 “국유화”했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혁명 탓에 러시아가 방탕해졌고 여성이 비천하게 취급받는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었다.
“볼셰비키는 나무로 만든 빈 통 안에 못을 박은 후, 사람들을 그 통 안에 빼곡히 집어넣고는 그 통을 이러 저리 굴리며 기뻐했다.”
이런 식으로 볼셰비키를 악마화한 다음, 지배계급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볼셰비키 혁명과 자국에서의 투쟁을 연결시켰다.
1919년 미국 시애틀에서 총파업이 터지자, 신문들의 헤드라인은 이런 식이었다. “빨갱이들이 이끄는 시애틀 파업 - 혁명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신문들은 이 파업이 “미국을 볼셰비키화 하려는 계획의 핵심 단계”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파업 물결이 이어지자 이민국은 미국 전역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체포
약 5천 명의 노동자들이 1919년 반
저자 데이브 셰리는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 8주 동안의 ‘빨갱이 사냥’으로 투옥된 미국 시민이,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신경제정책이 시행된 8년 내내 투옥된 사람보다 더 많았다.”
날조
1924년에 영국의
편지는 총선 나흘 전에 공개됐는데, 노동당을 연루시켜 타격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로부터 거의 75년이 지나서야 당국은 그 편지가 날조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지배계급의 공포를 보면, 노동자들이 직접 사회를 운영하는 것을 지배자들이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지배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파괴하고자 이토록 조직적으로 나섰던 것은, 그들이 지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