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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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낳았다. 특히 1917년 11월 7~8일(구력 10월 25~26일)에는 20세기 유일하게 노동자 국가를 수립한 10월 혁명이 벌어졌다. 본지는 연말까지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기사를 꾸준히 번역 연재하려고 한다.
100년 전 10월, 러시아의 자본주의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등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새롭게 급성장한 조직노동자들의 힘에 의해 자본주의 국가는 오래지 않아 분쇄됐다. 10월 혁명이 그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새로운 체제가 낡은 것을 대체할 터였다. 그러나 10월 이전 몇 달 동안 두 권력은 공존했고, 둘은 서로 맞물렸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궁극적으로 쓸어버리겠다고 으르렁댔다.
이런 상황은 오로지 혁명적 격변기에만 가능하다. 러시아 혁명가 블라드미르 레닌은 이를 “이중권력”이라고 불렀다.
두 권력은 동일한 혁명적 투쟁의 서로 다른 결과물이었다.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노동자 반란인 2월 혁명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차르 지배를 타도했다.
그런데 평범한 노동자들이 반란을 승리로 이끌었는데도 새로 탄생한 정부는 자본가들이 운영했다.
2월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의 취약한 자본가계급은 옛 차르 체제의 일부로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차르의 몰락을 이용해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도, 모든 위대한 반란들이 그랬듯이,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자신들의 조직을 건설했다. 이것이 노동자·농민·병사들의 평의회인 소비에트였다.
평범한 사람들은 소비에트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켰고, 처음으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들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 레닌이 묘사한 것처럼 페트로그라드에는 실제로 “두 개의 정부”가 있었다.
자본가들의 임시정부는 국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 반면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는 “국가 권력 기구를 거느리지는 못하지만 민중 압도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무장한 노동자·병사에게 직접 의존하고 있다.”(레닌)
잠시 동안 두 권력은 공존했으며 그 둘의 관계는 이상했다.
새로운 자본가 정부는 2월 혁명 이후 벌어진 혁명적 운동을 통해 권력을 얻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 “공식” 정부는 나약하고 무능했으며 끊임없이 위기에 시달렸다.
이 자본가 정부는 자신들의 경쟁 세력인 소비에트가 허용해야 존속할 수 있는 처지였다. 자본가 정부는 권력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혁명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심지어 정부는 제1차세계대전에 계속 참전하는 것이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멘셰비키 같은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 정부와 소비에트 사이에 양다리를 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구도는 지속될 수 없었다. 비록 두 권력이 서로 “맞물려” 있었지만 이들은 사회에서 완전히 적대적인 두 계급을 대변하고 있었다.
자본가 정부와 소비에트는 형태가 다른 두 개의 국가 권력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어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수단이다.”(레닌)
자본가 정부는 사회 최상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그 사람들의 지위는 자신보다 수적으로 많은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데서 나온다. 자본가들의 궁극적 권력은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수단(경찰과 군대)에서 나온다.
소비에트 국가는 노동자들의 생산수단 통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지키려고 존재했다. 소비에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짓밟으려 하는 자본가들의 시도를 물리쳐야 했다.
자본가들은 혁명을 사보타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본가 정부의 정치인들은 소비에트를 파괴하길 원했다.
최후의 결전이 불가피했으며 10월에 그 결전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