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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1917년 러시아에서 벌어진 노동자 혁명은 사회를 완전히 바꿔 놓았고 성 혁명도 그중 하나였다.

차르 독재 체제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으며 동성애자 남성과 여성은 끊임없이 처벌의 위험에 시달렸다.

동성애자여도 돈이 많은 경우에는 훨씬 더 안전했다. 부유한 레즈비언들은 고상한 사교모임에서 교제할 수 있었고, 상층 계급 동성애자들은 더 안전하게 은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급 동성애자들이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보통 사창가뿐이었다.

"가장 강한 문화가 가장 강력한 협력을 낳는다" 1918년 러시아 포스터

러시아 사회에서 성 억압은 오래되고 뿌리가 깊었다. 동성애가 불법이었을 뿐 아니라, 여성은 집에서 부리는 노예로 취급됐다.

그러나 혁명이 벌어지던 1917년 10월에 동성애는 합법화됐다.

소비에트 정부는 동성애자들을 국가 기관에 고용하는 등 동성애자들에 대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제한들도 폐지했다.

공공연하게 게이로 알려진 게오르기 치체린은 1918년에 외무인민위원[지금의 외무장관]으로 임명됐다.

자연스러운

1923년에 지도적 볼셰비키인 그리고리 바트키스는 〈러시아에서 성 혁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거기서 동성애를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명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에트의 법률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성적 문제에서 국가와 사회의 완전한 불개입을 선언”했다.

혁명 전에 남몰래 결혼했던 두 여성은 정식으로 결혼을 인정받았다.

사람들은 국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성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으며, 이것은 사람들의 삶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동성애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있긴 했지만, 혁명 러시아는 수십 년 정도 시대를 앞서 있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LGBT+가 자주 겪는 극심한 차별과 괴롭힘, 이런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후퇴하자, 혁명이 가져온 성 해방도 마찬가지로 후퇴했다.

볼셰비키는 러시아를 재정복하려 한 옛 지배계급과 제국주의 국가들을 물리쳤다.

박살

그러나 3년 동안의 내전으로 노동계급은 거의 박살났고 사회주의의 기초는 약화됐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런 상황에 처한 러시아 내부에서 반혁명을 일으켰고 러시아에서 국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혁명의 파괴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핵가족 제도와 함께 여성차별, 동성애 혐오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방식인데, 스탈린의 국가자본주의도 그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은 다시 가정 내 노예가 되도록 강요됐다.

1933년에 동성애는 다시 불법화됐다. 1934년에 남성 동성애는 5년 중노동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가 됐다.

동성애를 심각한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법률은 1993년까지 이어졌고, 러시아에서는 오늘날에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억압이 만연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 러시아에서는 짧은 시기였지만 LGBT+와 성 해방을 향한 거대한 진보가 있었다.

이런 해방이 거대한 노동자 반란의 시기에 벌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썼듯이 “혁명은 억압 당하고 착취 당하는 사람들의 축제이다.”

볼셰비키는 성 해방과 사회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이해했다.

노동자들이 자기 지배자들에 맞서 단결하려면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해야만 한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주도할 때, 사회에서 일체의 억압이 사라질 수 있다.

1917년에 이뤄진 진보는 성 해방이 가능하고, 그것이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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